아이러니한 풍경 -임성훈(미학, 미술비평)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 오픈스튜디오 2012>
 
아이러니한 풍경
임성훈(미학, 미술비평)
 
나는 김민주 작가의 작업과 작품을 크게 세 가지 관점에서 생각해 보려 한다. 첫째는 한국화와 현대미술의 관계에 대한 작가의 물음, 둘째는 작가가 다루고 있는 색감 그리고 셋째로는 작품에 드러난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1.
한국화나 동양화를 전공한 작가들은 흔히 자신들의 작업이 동시대의 미술에서 어떠한 의미를 갖고 있는지를 궁금해 하곤 한다. 여기에는 대체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물음이 근저에 깔려 있다. 현대미술의 흐름에 크게 개의치 않고 전통 회화의 고유성을 강조하는 독자적인 길을 걸어가야 하나? 아니면 현대미술, 특히 1960년대 이후 전개된 수많은 현대미술의 경향을 어느 정도 수용하면서, 이를 작업에 적절하게 반영해야 하나? 이번 워크숍에서 같이 이야기를 나눈 김민주 작가도 이러한 물음을 한번 쯤 던져보았을 것이다. 실상 이러한 물음은 작업에 방해가 되는 것이기도 하고 도움을 주는 것이기도 한데, 김민주 작가의 경우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작가의 작품을 보고 있으면, 고민스러울 수도 있는 이러한 물음들을 능숙하게 (또한 어떤 측면에서는 능청스럽게) 처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2.
김민주는 색을 잘 다루는 작가이다. 과하지도 않고 덜하지도 않는 색감을 화면에서 재현하는 일이 생각보다 그리 쉽지는 않다. 특히나 한국화의 경우 색을 잘못 다루면 치명적인 결과가 초래된다. 화면 전체가 어색해지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작품의 깊이와 내용이 홀연히 사라져 버리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한국화 작업은 다른 어떤 것보다 어려운 영역에 속하는 것이기도 하다.) 색을 잘 사용한다는 것은 단지 질료적인 측면만을 두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러니까 어떤 색을 사용해서 어떤 효과를 화면에서 나타내는 것의 문제는 아니라는 말이다. 색은 본질적으로 어떤 분위기와 조응되는 것이다. 어떤 그림에서 색에 대한 인상을 받았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실상 색 자체보다는 그 색으로 인해 환기되는 어떤 분위기를 느꼈기 때문이다. 김민주의 작품에 나타난 색은 정적인 것과 동적인 것이 교차하면서 생겨나는, 아주 미묘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예컨대, 물의 표면을 그린 이미지와 물의 내부를 그린 이미지에서 느껴지는 분위기는 단순히 화학적인 혼합으로 만들어 낸 색으로는 결코 표현할 수 없는 색의 조형미를 단적으로 드러내 보여준다. 이렇게 본다면, 김민주는 색과 분위기의 관계를 절묘한 방식으로 활용하여, 한국화의 또 다른 가능성을 모색하고 있다고 말해도 그리 무리가 아닐 것이다.
 
3.
작품을 보면서, 나는 김민주가 아이러니를 직관적이면서도 감각적으로 파악하고 있는 작가라는 생각을 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 드러나는 것과 숨겨지는 것, 열리는 것과 닫히는 것 등과 같은 이중성을 화면에 심각하면서도 능청스럽게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최근의 몇몇 작품들은 깊은 침잠이나 가늠할 수 없는 심연을 보여주는 듯하면서도, 너무 심각하지 않게 슬쩍 빠져나와 바라볼 수 있게 하는 이미지를 효과적으로 배치하고 있다. 또한 화면의 이미지들은 얼핏 보면 평범한 풍경화에서 보이는 모습들이지만, 들여다보면 볼수록 어처구니없고 뭔가 어긋난 듯한 이미지들로 중첩된 즐거운 그림이다. 그림에는 작가 김민주의 생각 속에 떠도는 많은 것들이 물고기, 나무, 연못, , 바위, 꽃 등으로 변용되어 하나의 아이러니한 풍경으로 재현되어 있다. 작가는 무엇을 닮게 그린다거나 혹은 대상의 본질을 표현한다는 식의 재현의 문제에 애당초 관심을 갖고 있지 않은 듯 보인다. 생각들의 사이, 그 틈 속에서 불쑥불쑥 고개를 내민 이미지를 화면에 무심하게 (혹은 치밀한 구성으로) 담아내고 있기 때문이다. 참으로 아이러니한 풍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