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주의 ‘어초문답’에 대하여 - 정연심(미술비평)


   2007 어락도(魚樂圖), 2009 어락원(魚樂園), 2011 흥얼흥얼_Humming, 2012 어초문답 (漁樵問答)... 이것은 작가 김민주가 가진 번의 개인전 타이틀이다. 번의 개인전에서 보여준 작업은 현대미술의 지형도에서 한국화가 위치하고 지향할 있는 가능성을 실험한 토대가 되어왔다. 이러한 시도가 수백 년의 역사를 가진 한국화의 전통에서 아직 실험되지 않았던 미학적 가능성을 생각해볼 있는 접점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그의 작업은 가지 사색거리를 제공해준다. 김민주는 그동안의 작업을 통해 전통이란 우리에게 익숙하면서도 낯선 양가성을 지닌 공간이라는 사실을 재확인시켜 준다. 한국화하면 떠오르는 무위자연의 세계와 노장사상 등은 그의 눈과 마음을 통해 과거에 봉인된 화두가 아니라 일상성을 다룬 회화와 문학의 공간에서 새로운 맥락으로 재배치된다. 그의 작업에서 발견할 있는 꼼꼼한 세필의 세계는 현미경으로 관찰할 있는 미세한 자연계, 마이크로스코픽한 세상으로 우리를 인도해준다.

한국화의 새로운 모습을 담아내는 김민주의 작업은 오늘날 동양화, 한국화에 대해 젊은 작가가 어떻게 실험하는지를 알려주며, 기법적인 실험성을 비롯해 작업에 대한 일관적인 태도(이는 여러 번의 개인전에서 드러난다), 작가정신, 그리고 유머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예를 들면, 어초문답도(漁樵問答圖) 주제는 이미 동양화에서 전통적으로 다뤄졌던 주제로 나무꾼과 어부가 만나서 서로 대화를 나누는 모습을 표현한다. 이러한 동양화의 사유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은 전혀 다른 맥락에서 새로운 해석과 번역을 담아내어 과거에 화답하는 현재의 어초문답도라고 해야 것이다. 한마디로 작가는 과거의 주제를 현대적 관점과 현대적 시공간으로 끌고 우리가 일상적으로 살아가는 공간과 사회를 다시 바라보게 한다. 특히, 김민주의 작업은 우리의 문화에 익숙한 범자연주의적 태도를 관망하게 하면서도 동양화론의 전통에만 갇힌 것이 아니라, 상상력과 유머라는 독특한 작가의 기제를 작동시킨다. 이미지를 상상하고 (제목에서) 시어를 붙여내는 작가의 발상은 따뜻한 색감의 배치만큼이나 감각적이다. 섬세한 색채와 유려한 선들은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언어 역할을 하는 공간이다. , 시·서·화의 구조를 만들어내는 장치들이라고 있다.

공아트 스페이스에서 김민주는 그물 설치를 디스플레이 하였고, 몸은 물고기인데 인간의 얼굴을 가지고 있는 반인반어를 등장시켰다. 필선은 가늘고 섬세하지만, 시각적으로 강렬하다. 그리고 작품을 이후에는 묘한 여운을 얻게 된다. 그는 독특한 변형체를 스스럼없이 만들어 문화적 코드를 통한 해학의 깊이를 드러내며, 이러한 작품에서 자연과 인간의 세계는 기묘하게 연결되어 있다. 물고기의 몸에 사람의 팔다리를 가진 새로운 생명체는 그로테스크한 모습이라기보다는 작가가 가진 상상력의 폭을 더욱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배를 인물과 물고기가 서로 극에서 그물을 모습은 간단한 선과 묵으로도 감성적이고 섬세한 장면을 그릴 있음을 알려준다. 조감도 방식으로 그려진 대형 풍경화에서 작가는 산뜻한 느낌의 노란색과 회색, 초록색의 파스텔 톤을 사용하였다. 우리는 작품이 동양적인 기법으로 제작되었다는 느낌을 잊고 사물, 풍경화, 인간이 서로 일체가 되어가는 몰입의 순간과 동화의 모멘텀을 발견할 있다. 이러한 대형 풍경화에는 조그만 스케일로 그려진 여성의 몸이 등장한다. Go naked!’라는 말처럼 아무런 스스럼없이 자연의 일부로 살아가는 존재를 상징한다. 이는 개의 선으로 간략하게 묘사된 여성의 존재이자 우리의 모습이다. 김민주는 전통 속에 머물렀던 전통적 수묵, 채색의 느낌을 경계 밖으로 확장시켜 두지만, 도전적이거나 위협적인 방식이 아닌 유희와 일종의 지적인 비틀기(twist) 이용한다.    최근 갤러리 전시에는 작가가 배치한 돌과 종이배, 스케치풍의 풍경화가 있고, 옆으로는 누군가가 먹고 남긴 스타벅스(?) 플라스틱 컵이 빨대와 함께 배열되어 있다. 배치한 방식도 우리의 눈높이가 아닌, 위에서 아래로 훑어보게 만들었다. 또한 망친 그림들은 어초문답 어망에 들어가 있다. 모든 것들은 버려지지 않고 그림 안에, 그리고 밖에서 잔잔하게 이야기를 걸어온다.

장지에 먹과 채색으로 그려낸 <휴가>(2012)에는 우리나라에서 쉽게 발견할 있는 빌라형 빌딩이 등장하고, 창문과 건물의 파사드 공간에는 폭포가 흘러내린다. 빌딩에는 균열이 생겨 물이 새어나고 폭포가 범람하여도 작품의 제목인 ‘휴가’처럼 편안하고 시각적으로 위협적이지 않다. <별일 없이 산다> <산수유람>, <순간의 여유>, <물을 긷다>에는 번잡한 일상 속에서 우리가 사는 이곳이 바로 무릉도원임을 알려준다. <물을 긷다>에서 한적한 정자를 바라보며 유유자적 앉아있는 인물은 한국화의 공간이 남성적 공간이었음을 알려주듯 자연의 일부로 남아있는 여성의 존재를 보여준다. 간략한 선으로 묘사된 여성의 몸은 단순하게 그려졌지만, 대자연 속에 쉽게 상처받는 존재가 아니라, 작고 가늘지만 존재감을 드러내며 공간의 여기저기에 배치되어 있다. 특히, 머리를 땅에 닿게 하고 쭈그리고 있는 모습이나 여성의 머리카락이 나뭇잎으로 확장되는 모습은 기이한 초상화이자 풍경화를 만들어낸다. 이것은 재발견된 헨리 다저(Henry Darger) 그림처럼 초현실적인 풍경으로, 언캐니한 세계로 관람자를 몰입시킨다.

<희망의 나라로>, <배를 저어가자> 작품들은 콧노래로 노래를 부르면서 노를 저어 가거나, 자연의 품에 안기는 작가 자신의 모습이자, 나아가서는 빠른 속도로 변해가는 도시 공간 속에 매몰된 우리가 찾아가는 하나의 파라다이스이다. 과거 미술가들이 ‘파라다이스’라는 이름으로 현실을 도피했던 이국주의적인 공간이 아니다. 작가는 과거의 취향을 뒤쫓던 현실과 유린된 공간에는 관심을 두지 않고, <초문답>이라는 여러 작업을 통해서 익숙하면서 낯선 지금의 이야기를 끌어내고 있다.

한국화는 전통화론과 현대화론, 서구 미술과의 치열한 접전에서 가장 도전을 받아왔던 분야이다. 인터미디어(intermedia) 추구하는 현대미술에서 장르별 영역이 무너지면서, 가장 많은 변화를 요구받았던 것이 동양화, 한국화의 변용이었다. 그러나 현대미술의 맥락에서 쉽게 발견할 있는 미학적 태도와 개념미술은 우리의 전통 속에 이미 구축되어온 특징임을 김민주의 작업은 말해준다. 이러한 요소는 그의 작업이 취한 구성에서 독특하게 반영된다. 작가는 서구식의 응시나 소실점 개념이 아닌, 일견 한번 보고 지나가는(glance) 우리의 시각 방식을 사용하였다. 우리는 서양인들처럼 사물을 ‘응시’개념으로 바라보지 않았음을 그는 말해주고 있다. 우리는 풍경을 보면, 나무와 나무, 그리고 사물들끼리의 관계성을 더욱 중요하게 생각하였으며, 씨실과 날실로 짜인 구조처럼 사물과 사물은 서로 호흡했음을 알려준다. 그의 작품에서 이러한 요소들은 유기적인 관계성을 띠고 있다. 그리하여 작가의 ‘어초문답’은 나무꾼과 어부의 대화를 넘어, 그림들은 보는 너와 나의 관계성, 자연과 인간의 관계성까지도 함께 바라보고 있다. 글은 김민주의 어초문답도에 대한 나의 답이자, 비평적 화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