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과 현대의 융합이 주는 즐거운 상상 - 하계훈(미술평론가)


김민주의 작품 속에는 사람의 얼굴과 팔다리에 물고기의 몸통을 가진 상상의 존재가 반복적으로 등장해왔다. 그렇게 의인화된 인물(?)은 연잎이 탐스럽게 펼쳐진 연못 사이를 노닐며 유유히 헤엄치기도 하고 계곡의 정자나 작은 배 위에 비스듬히 누워서 독서를 하며 한가롭고 여유로운 시간을 즐기기도 하고, 심지어 천연덕스럽게 낚싯대를 드리운 채 자신과 동류(同類)인 물고기를 낚으려고 하기도 한다. 이러한 행동을 하는 인물들은 하나같이 화면 밖을 향해 무표정하면서도 능청스런 눈길을 보내고 있으며 메기처럼 커다란 입술을 일자로 다물고 있어서 감정의 표현이 유보되어 있다. 이렇게 화면 속의 인물들의 모습은 해학적이기도 하고 기이하기도 하지만 그들이 보여주는 행동은 영락없는 사람의 그것이어서 이들이 우리 사람들의 사는 모습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이러한 반인반어(伴人半漁)의 존재를 가리켜 상상 속에서 창조해 낸 자기 자신으로 해석할 수도 있고 자신의 작품을 바라보는 관람객 그 누구의 자화상도 될 수 있다고 말한다. 어느 날 우연히 물속을 유유히 돌아다니는 물고기들을 바라보다가 상상력이 발동하여 이러한 작품을 그리기 시작하였다고 하는 김민주는 인간과 물고기처럼 두 개의 서로 다른 존재 사이의 경계를 허물고 서로 공감할 수 있는 접점을 확보하여 관계와 소통의 통로를 확보하고, 이러한 혼성적인 존재의 몸을 빌려서 일상에서의 일탈과 상상의 유희를 꿈꾸는 상황과 자아의 분신으로서의 인물들을 창조해냈다고 한다.

우리는 생활이 복잡하고 고단할수록 그로부터 벗어나고픈 꿈을 키운다. 한가한 오후의 몽상 뿐 아니라 소설과 만화나 영화, 그리고 TV 광고에서도 종종 이러한 인간의 바람이 표현되기도 한다. 이때 우리는 현실 속의 자신의 모습 그대로를 가지고 일탈을 떠나기보다는 새로운 모습과 새로운 능력으로 상상 속의 이야기에 등장하곤 한다. 중국의 철학자 장자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날아다니다가 잠시 나뭇가지에 앉아 쉬는 사이에 잠이 든다. 이때 다시 인간으로 깨어나는 일화를 통해 장자는 자신의 정체성에 관한 인간과 나비의 구별이 모호한 상태를 경험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장자는 결국 우주의 만물은 인간이건 나비이건 무한한 우주를 구성하는 하나의 객체로서 그 구별이 의미 없다는, 세상과 사물의 이치에 대한 보다 커다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장자의 호접몽에서 장자가 나비와 인간의 경계를 허물고 보다 커다란 진리에 도달하였듯이 김민주는 물고기와 인간의 경계를 허무는 상상을 통해 자아에 대한 깨달음과 자아를 구속하는 틀에서의 해방을 추구한다. 헤르만 헤세의 소설 <데미안>에서 주인공 데미안이 “새는 알에서 빠져나오려고 몸부림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누구든 세계를 부숴야 한다. 그 새는 신을 향해 날아간다”고 말한 것과 유사하게 상상의 세계에서 작가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김민주의 작품 속에서 보다 새롭고 확장된 세계로의 비상과 진입을 꿈꾸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이야기를 담고 있는 김민주의 작품이 관람객의 눈길을 끄는 요소는 화면 속의 신기한 인물의 다양한 행동과 동작에서도 나타나지만 작가가 먹과 붓을 다루는 테크닉에서도 동시에 드러난다. 김민주의 작품은 일종의 청록산수와 비슷한 색감으로 먹 이외에는 거의 한 가지 색을 사용하는데 그치는 단색조로 구성된 화면이다. 이러한 화면을 만들어내기 위하여 작가가 주로 먹을 사용하고 있지만 화면에 먹을 도입하는 방법은 전통적인 방식에 따라 농담의 미묘한 차이를 표현하는 것 이외에도 수채화처럼 붓자국이 겹쳐지면서 사물의 입체감을 표현하는 현대적인 기법이 동사에 사용되고 있다. 작가는 이러한 기법으로 표현된 작품을 통해 관람자들이 전통적인 수묵과 채색화의 맛을 느낌과 동시에 먹의 느낌을 현대적으로 체험할 수 있게 해주며 화면 속의 상황이 일상의 현실에서 벌어질 수 있는 것이면서도 현실에서 일정한 거리를 두고 있음을 동시에 생각하게 해준다.

김민주는 이번 전시를 통해서 작가가 펼쳐왔던 상상의 세계를 전통적인 산수화의 배경 속으로 도입시키면서 보다 확장되고 다양한 화면을 구성한다. 연잎 사이를 헤치며 물속을 헤엄치는 반인반어의 인물이 이번 작품에서는 물 밖으로 나와 바위 위에 걸터앉아 있기도 하고 전통적인 산수를 배경으로 다이빙을 한다거나 언덕을 오르기도 하는 등등 좀 더 모던하고 다양한 행동을 취한다. 그뿐 아니라 이번에는 물고기만 사람처럼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언덕을 오르는 당나귀나 하늘을 나는 새들도 사람의 얼굴을 하거나 인체의 일부를 가지고 각선미를 뽐내기도 하고 하늘을 날아가는 것으로 표현되어 있기도 하다. 전통 회화에서 볼 수 있는 높은 산악의 모습과 기암괴석이 다소 과장되면서도 현대적으로 표현된 산수를 배경으로 이러한 동물들과 인물들이 지어내는 화면을 통해 김민주는 전통과 현대가 융합된 장을 만들어내고 그곳에서 자신의 소망과 꿈을 자유롭게 펼쳐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우리가 김민주의 작품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부채나 발 또는 삿갓 등으로 얼굴을 가린 인물들이다. 작가가 언급한 것처럼 화면 속의 인물들은 작가 자신일 수도 있다고 생각할 때,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이 평소에 꿈꾸어왔던 상상의 세계와 그 속에서의 작가의 일탈과 자유를 관람객들에게 보여주면서 공감과 소통을 이끌어내고 있으면서도 부분적으로는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자유롭게 거닐면서 신비주의적인 작가로 남아 사적인 사유와 활동을 펼칠 수 있는 공간을 소망하기도 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