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정웅 청년작가전> 김민주, 유유히 세상에서 노닐다. -홍윤리 (광주시립미술관 학예연구사)

 
 
 
김민주의 작품은 흥미로움으로 가득하다. 우선 그림의 주인공으로 보이는 해괴하게 생긴 반신반어 때문이다. 그녀의 그림에는 긴 머리를 쓸어내리며 바위에 앉아 있는 아름다운 인어가 아닌, 상체가 물고기이고 하체가 사람인 형상이 등장한다. 우리의 기대와 다른 이런 반전은 일정한 충격을 주는 효과를 거두었으며 의식의 고정성을 깨부순다
 
김민주의 반신반어의 형상은 초현실주의자 르네 마그리트의 <인어>를 떠올리게 할 수도 있다. 마그리트의 <인어>는 해변에 누어있는 여성의 하체 몸체를 가진 물고기로서 일상적이지 않는 곳에서 오는 낯설고 불편함을 준다. 하지만 김민주의 반신반어는 의식의 고정성을 깨부수는 충격과 더불어 해학적이고 친근하다. <어락원>(2008)의 두툼한 입술과 함께 관람객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팔 다리를 저으며 수영을 하는 모습, <어락도>(2007)의 연못에 발을 담그고 있는 모습, <어락도>(2006)<어락도>(2007)처럼 자신을 보는 관객과 눈을 마주치기라도 함을 피한 듯 발이나 부채로 얼굴을 가린 모습 등이 그러하다.
 
작가는 우연히 물고기가 연못에서 헤엄치는 모습을 보고 자유롭게 유영하는 물고기가 부럽기도 하고 그 안에서 자신이 보이기도 하여 이 형상을 그리기 시작했다고 한다. 몰입을 통해 나를 들여다보는 형상으로 자신이 물고기인지 물고기가 자신인지를 생각하다 이를 화면에 그려냈던 것이다. 이는 꿈속에서 나비가 되어 꽃밭을 날다 깬 장자가 지금 나비가 인간의 꿈을 꾸고 있는지 구분하기 어려운 인식의 경계와 인생무상을 이야기한 장자의 호접지몽을 연상시킨다.
 
그림 속 내가 물고기인가 물고기가 나인가의 모호한 인식의 경계는 배경을 이룬 공간에서도 일어난다. 정갈한 한옥집을 그린 <순간의 영유 1, 2>(2010)는 지붕을 뚫고 나무가 있기도 하고 방안에서는 바위가 층층이 쌓여있으며 그 사이로 시원한 폭포가 쏟아진다. 한옥의 마당은 연잎 등이 있는 아름다운 호수이다. 한옥이 아름다운 집인지 자연 속 폭포인지 경계가 어렵다. <배를 저어가자 1, 2, 3, 4>(2010)<희망의 나라로>(2011)에서도 한가롭게 떠 있는 배, 현대식 오리배, 거대한 크루즈이건 간에 배속은 폭포와 나무 등이 섞여 시공간을 넘나들며 유쾌한 공간을 만들어냈다.
 
<어초문답>(2012)처럼 그녀는 최근 나무와 대화를 하며 나무와 물아일체를 시도했다. 몸은 사람인데 머리카락은 나무이다. 물고기였던 사람은 이제 나무에 몰입해 있는 나무꾼이 되었다. 인식의 전환과 시공간을 넘나드는 그녀의 자유롭고 유쾌한 상상력은 관객으로 하여금 변화의 정신적 자유로운 여행을 준비하게 해준다.
 
김민주의 톡톡 튀는 개성적인 경향과 함께 그녀의 작품은 관객을 소요하는 사색의 공간으로 이끈다. 이는 작품 속 주인공이 결정적 역할을 한다. 작가 김민주는 자연 속 공간에 반신반어, 어초문답을 하는 나무꾼, 낚시군, 삿갓을 쓰거나 부채로 얼굴을 가려 남자인지 여자인지 어린인지 어른인지 알 수 없는 사람 등을 등장시켰다. 이들은 메시지의 전달자로 사용되고 있다. 관객은 공간 속의 인물에 투영되어 그림 속 사색의 공간을 넘나들게 된다.
 
2004년부터 제작한 <어락원>의 주인공은 물속에서 유유히 노닐었다. 물속에서는 35마리의 물고기가 청색의 아름다운 연잎과 줄기 사이를 가로지르며 자유롭게 소요하는 모습을 담았다. <순간의 여유>(2010)에서는 어찌나 조용하던지 물에 뛰어든 물고기 여인의 첨벙하는 소리가 조용한 세상의 적막을 깨트릴 정도이다. 물고기가 깨뜨린 공간에 의해 그 공간의 고요함을 다시금 일깨워준다. 그림 속 주인공은 사색을 하며 낚시를 즐기기도 한다. 배위에서, 집에서 또는 연못에서 낚시대를 대기도 하고 몸체의 수십배가 넘는 그물질을 하기도 한다. 자연과 교감하는 적막의 장소에서 주인공의 움직임은 조용한 사색의 공간임을 다시금 인식하게 해준다.
 
이런 사색적 공간으로의 이행은 작가가 몰입을 할 수 있었던 사색적 공간내의 경험에서 연유했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김민주의 작품은 대형 미술관보다 사적인 공간에서 감상하는 것이 더 어울릴 것 같기도 하다. 집의 소파에 편안하게 기대어 작품의 안과 밖을 넘나들며 오랫동안 지켜보며 상상의 나래를 펼침을 지향한다. 이는 중국 육조시대에 종병이 젊어서 명산을 마음껏 유람하고 음미하면서 산수에 나타난 부처의 영에 감응하여 자신의 육체에 구속된 정신을 일깨워 자유롭게 하고자 했으나 나이가 들어 더는 산수를 유람할 수 없게 되자, 과거에 노닐었던 산들을 방안에 그려 놓고 이를 감상하면서 자신의 영혼을 해방하고자 했던 와유(臥遊), ‘방안에 누어서 산수화를 보고 노닌다라는 산수화의 연원을 떠올리게도 한다. 그녀의 작품은 독창적이며 새롭지만 동시에 전통 산수화처럼 공간적으로 헤아리거나 한정할 수 없는 무한함을 지녔다.
 
또한, 작가 김민주는 전통 한국화의 필묵방식으로 그림을 그린다. 화선지에 먹선으로 그려진 나뭇잎과 바위 표현 등은 전통 한국화 기법에서 봤음직한 여러 표현기법에서 연유했음을 금방 알아차릴 수 있다. 유독 촘촘하게 그려진 필선이 완성된 후 청록산수화에서 즐겨 사용하였을 법한 청록색의 물감이나 담백한 색채로 부드럽게 스며드는 담채로 채색한다. 특히 전통화법에서 사용되는 소소밀밀(疎疎密密)이 돋보인다. 화선지의 여백 또는 확트인 공간과 촘촘하게 그려진 나무와 한옥의 지붕과 같은 오밀조밀한 구성력은 공간의 긴장감과 활력을 동시에 주고 있다. 이런 화선지에 필선과 부드러운 담채의 전통 기법은 소요하는 사색적 공간에 절묘하게 어울린다. 작가는 애초부터 법고창신같은 어떤 거대한 목표를 가지고 전통 미술을 현대화 시켜야겠다는 생각은 아니었던 것 같다. 기초를 쌓는 과정이라 생각했던 동양화 작업에서 가능성을 보았고 자신이 그리고자 하는 것을 옛 사람들로 부터 확인하면서 자연스럽게 전통적 방식을 자신의 작품에 접목시키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새로운 매체들이 범람하는 현대미술 속에 그녀가 사용한 전통 회화적 요소는 새롭고 독창적으로 다가오게도 한다.
 
작가가 붙인 제목 별일 없이 산다’, ‘인생은 아름다워’, ‘순간의 여유’, ‘배를 저어가자’, ‘물을 긷다’, ‘휴가등에 소요하는 사색적 세상을 그림 속에 담고자 한 작가의 의도가 그대로 드러난다. 하지만 그녀의 그림 속의 물고기처럼 그녀는 유유자적하며 한가로운 생활을 하고 있을까. 작가는 현대인들, 현대 작가들이 그렇듯 누구보다 바쁜 일상을 보내며 쉼 없이 달려온 것 같다. 서울대학교 동양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대학원을 다녔고 조교를 하면서 그림을 그렸렸고 최근 졸업을 했다. 2007년 첫 개인전 이후 벌써 네번의 개인전을 가졌고, 국내외 주요 기획전시에 참여하며 동분서주했다. 2012년 서울문화재단 예술창작기금 시각예술분야에 선정되었고, 2011년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운영하는 난지미술창작스튜디오에서, 현재는 국립현대미술관의 고양창작센터에서 레지던스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작품을 제작하고 있다. 이런 바쁜 삶과 일, 일상이기에 작가는 단잠 같은 달콤한 여유의 기쁨을 더욱 갈구하며 표현하고 있지 않았을까 생각된다. 작가 김민주의 작품에는 순간의 여유에서 오는 행복감이 배어 있다. 그녀의 작품은 바쁘게 움직이는 현대인의 일상 속에서 잠깐이라도 휴식을 갖고, 사색을 즐기며 소요하고 싶은 현대인의 오아시스 같은 것이란 생각이 든다. 그녀의 그림은 무한의 공간을 넘나들며 상상의 즐거움을 만끽하며 소요하며 즐겁게 노닐라고 속삭이는 듯 하다. 그녀의 작품은 단순한 이야기를 들려주고자 함만은 것이다. 작가는 우리에게 잠재된 내적 가능성과 자유의 획득을 통한 정신적 변화와 행복의 달성을 가르쳐주고 있다.